한복은 단순한 전통 의복을 넘어, 한국인의 생활 방식과 미의식, 사회 구조, 그리고 시대정신을 고스란히 담아온 문화유산이다. 한복의 기원은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유적과 암각화, 토기 문양 등을 통해 살펴보면, 이미 이 시기 사람들은 활동성을 고려한 상·하의 분리형 옷차림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사냥과 채집, 농경 생활에 적합한 구조로, 한복의 기본 형태인 저고리와 바지·치마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북방 기마문화의 영향으로 바지는 몸에 밀착되고 활동성이 강조되었으며, 이러한 특징은 이후 삼국시대까지 이어진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짧은 저고리와 바지, 허리띠를 착용하고 있는데, 이는 오늘날 한복 구조와도 상당한 유사성을 지닌다. 즉, 한복은 외래 문화를 무분별하게 수용한 결과물이 아니라, 한반도의 자연환경과 생활 조건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고유한 의복 문화라 할 수 있다.
삼국시대에 이르러 한복은 보다 체계적인 형태와 계층별 차이를 갖추게 된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각 정치·문화적 환경이 달랐지만, 기본적인 의복 구조는 유사했다. 고구려는 활동성이 강한 기마 문화의 영향으로 바지 중심의 실용적인 복식이 발달했고, 백제는 온화하고 세련된 분위기의 복식으로 우아함을 추구했다. 신라는 금관과 장신구에서 볼 수 있듯이 화려한 장식 문화가 발달하여 의복에도 장식성이 강조되었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당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색채와 소재가 다양해졌지만, 여전히 한복 고유의 직선과 곡선 조화는 유지되었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면 한복은 귀족 중심의 화려한 복식 문화로 발전한다. 불교 문화의 융성과 국제 교류의 확대는 비단, 금사, 자수 등 고급 소재의 사용을 증가시켰고, 색채 또한 대담하고 화려해졌다. 특히 여성 복식에서 저고리는 점차 짧아지고, 치마는 길고 풍성해져 우아한 실루엣을 형성하게 된다.

조선시대는 한복의 형태가 가장 정형화되고, 동시에 엄격한 규범 속에서 발전한 시기라 할 수 있다.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은 조선은 의복을 단순한 생활 도구가 아닌, 신분과 예절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인식했다. 이에 따라 왕실, 양반, 중인, 상민, 천민에 이르기까지 신분에 따라 착용할 수 있는 옷의 색상과 소재, 장식이 세분화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비교적 고려의 영향을 받아 화려함이 남아 있었으나, 후기로 갈수록 절제와 단아함이 강조되며 한복의 미학은 ‘여백의 미’와 ‘자연스러움’으로 정착된다. 여성 한복은 짧은 저고리와 넉넉한 치마가 대비를 이루며 독특한 곡선미를 형성했고, 남성 한복은 도포, 두루마기 등을 통해 품위와 절제를 표현했다. 이 시기 한복은 일상복, 예복, 상복 등 용도에 따라 세분화되었으며, 한복의 기본 틀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 한복의 모습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근대 이후 서구 문물의 유입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한복은 큰 변화를 맞이한다. 서양식 의복이 일상복으로 자리 잡으면서 한복은 점차 명절이나 의례용 복식으로 그 역할이 축소되었다. 그러나 이는 한복의 소멸이 아닌,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해방 이후 한복은 민족 정체성을 상징하는 복식으로 재조명되었고, 현대에 들어서는 생활한복, 퓨전 한복, 한복 드레스 등 다양한 형태로 재해석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한복의 구조적 아름다움과 친환경적인 소재, 기능성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며 패션 산업과 문화 콘텐츠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한복은 과거의 유물이 아닌,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살아 숨 쉬는 문화유산이다.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축적된 미와 철학을 담고 있는 한복은 앞으로도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으로서 그 가치를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