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광종·성종이 만들어낸 고려 500년의 기틀
고려는 약 500년 동안 이어진 우리나라의 중요한 중세 왕조로, 통일 국가의 기반을 확립하고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운 시기입니다. 긴 역사 속에서 수많은 왕이 있었지만, 고려의 초석을 다지고 국가 발전의 전환점을 마련한 인물을 꼽자면 태조 왕건, 광종, 성종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세 왕은 고려의 건국, 개혁, 제도 구축의 흐름을 대표하며, 오늘날에도 정치·행정·문화적 의의를 남긴 인물들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고려를 대표하는 이 세 왕의 특징과 업적을 살펴보며, 고려의 국가 체제가 어떻게 완성되어 갔는지를 이해해보겠습니다.
1. 태조 왕건 – 고려의 창업자, 민생과 포용의 정치
재위: 918~943년
고려의 첫 번째 왕인 태조(太祖) 왕건은 혼란스러웠던 후삼국 시대를 통일한 지도자로, ‘호족 연합’ 체제를 활용해 새로운 왕조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그의 정치는 단순한 군사적 성공에 그치지 않고, 다양성과 통합을 중시한 점에서 큰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로 포용의 리더십을 갖춰 다양한 지역 호족들을 등용하여 내부 갈등을 최소화했다는 점과 민생 안정을 중시하여 농업 회복과 백성 생활 안정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는 점
후당·거란 등 주변 국가와의 균형 있는 외교를 유지함으로써 외교적 균형 감각을 지녔다는 점, 후대 왕들이 참고하도록 ‘훈요십조’ 마련하는 등의 예견적인 유훈 정치를 펼쳤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1) 후삼국 통일
왕건은 고려 건국 후, 군사력·외교력을 균형 있게 사용해 936년 후백제와 신라까지 아우르며 후삼국을 통일했습니다. 이는 한반도 정치 지형을 다시 안정시키고 중앙집권적 왕조의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2) 호족 세력과의 연합 정권 구축
당시 지역 호족들의 힘은 매우 컸기 때문에 왕건은 이들을 억누르기보다 혼인·지방 자치 인정 등 다양한 방식으로 포용하며 국가 통합을 이끌었습니다.
3) ‘훈요십조’ 반포
태조는 후대 왕들이 지켜야 할 10가지 원칙을 제시하며 정치적 방향성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고려 왕조가 안정적으로 이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2. 광종 – 개혁 군주, 왕권 강화를 통한 국가체제 정비
재위: 949~975년
고려 초기의 가장 강력한 개혁 군주로 꼽히는 광종(光宗)은 지나치게 강했던 호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그의 개혁은 고려를 국가다운 국가로 정비한 ‘체제 혁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혁적이고 결단력 강하다는 점, 왕권 강화에 집중하고 신분 정의 확립 의지를 보였다는 점, 중앙 관료 체제 구축 추진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 노비안검법 실시
광종의 대표적 업적은 노비안검법(奴婢按檢法)입니다. 부당하게 노비로 끌려간 사람을 조사하여 다시 양민으로 해방시킨 법으로, 호족들의 경제·군사적 기반을 약화시키는 결정적 조치였습니다.
이것은 동시에 백성들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2) 과거제 도입
광종은 중국의 제도를 참고하여 과거제를 도입했습니다. 이는 혈연·지방 연고 중심의 호족 정치에서 벗어나 실력 있는 인재를 국가 관리로 등용하는 혁신적인 제도였습니다.
고려가 500년 동안 유지되는 동안 과거제는 안정적 관료제를 유지하는 핵심 기반이 됩니다.
3) 왕권 중심 정치 구조 확립
광종은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기도 하며 왕권을 강화했습니다. 국가 조직을 재정비하고 왕의 명령이 전국적으로 통일되도록 체제를 강화했습니다.
4) 자주적 국가 위상 강화
독자적 연호 사용(광덕·준풍)은 고려가 단순히 중국의 세력 아래 있는 국가가 아니라 자주적인 왕조임을 선언한 상징적인 조치였습니다.
3. 성종 – 고려 법·행정 체계의 완성자
재위: 981~997년
성종은 광종 이후 왕권을 안정시키고 국가 조직을 체계적으로 정비한 왕으로 평가받습니다. 즉, 태조가 나라를 세우고 광종이 왕권을 강화했다면, 성종은 국가 제도를 정비하여 고려를 완전한 중앙집권 국가로 만든 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교 정치 이념 수용했다는 점,행정 체계 확립에 집중하고 균형감각 있는 통치했다는 점 문치주의 기반 마련을 하였다는 점이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1) 최승로의 ‘시무 28조’ 수용
유교 정치철학을 바탕으로 국가 운영의 방향을 제시한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정치적 안정과 행정 개혁을 이뤘습니다. 이는 고려 정치 문화의 기초를 형성했습니다.
2) 중앙 관료 조직 강화
성종은 유교적 중앙집권을 지향하며 다양한 관서와 정책을 정비했습니다. 지방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중앙 정부의 힘을 강화했습니다.
3) 지방 행정 체계 구축
성종은 지방관을 파견하고 중앙에서 지방을 통제하는 체계를 확립했습니다. 이를 통해 호족 중심의 지방 자치가 감소하고 국가 운영이 보다 통일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4) 학교·교육 제도 정비
교육기관을 확충하여 문신 관료 양성 체계를 강화했습니다. 이는 이후 고려 전반에 걸쳐 **문치주의(文治主義)**가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무리: 세 왕이 완성한 고려의 기틀
태조·광종·성종은 각각 건국 → 개혁 → 제도 완성이라는 흐름 속에서 고려라는 왕조의 근간을 만들었습니다.세 왕의 정책은 고려가 단순한 신생 왕조가 아닌 안정된 중앙집권 국가로 성장하는 토대가 되었으며, 후대의 정치·문화·제도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