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러 부족국가의 등장과 시대적 배경
기원전 1천년 무렵부터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는 다양한 부족국가들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는 고조선이 멸망한 이후 각 지역의 세력들이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키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시기였다. 대표적인 부족국가로는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그리고 남부 지역의 삼한(마한·진한·변한)이 있다. 이 시기는 본격적인 고대 국가로 발전하기 전의 과도기로, 각 집단은 고유한 정치 구조와 생활 문화를 지니면서도 점차 중앙집권적인 형태로 나아갔다. 이러한 부족국가들은 후대의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으로 발전하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부여는 만주 송화강 유역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비교적 이른 시기에 국가 형태를 갖추었다. 사출도(四出道) 제도라고 하는 독특한 행정체계를 운영하며 귀족 중심의 사회 구조를 유지했다. 반면 고구려는 부여의 문화를 계승하면서도 군사적 성격이 강했다. 옥저와 동예는 각각 함경도와 강원도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해안과 산악 지형을 기반으로 한 경제 활동이 발달했으며, 삼한은 한반도 남부에서 농경 문화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이들 부족국가의 공통점은 씨족 사회를 넘어 지역 중심의 통합체로 발전했다는 점이며, 각기 다른 자연환경 속에서 다양한 문화적 특색을 형성했다.
2. 부여와 고구려 — 북방의 강한 기상
부여는 여러 부족국가 중에서도 가장 조직적인 국가 체계를 갖추었다. 왕 아래에 사출도의 제후들이 지방을 다스렸고, 형벌 제도가 정비되어 있었다. 특히 ‘우제점법(牛祭占法)’이라 하여 소의 발굽을 불에 태워 그 결과로 길흉을 점치는 제사가 유명했다. 부여의 백성들은 말을 잘 타고 사냥과 목축에 능했으며, ‘순박하고 의리를 중시한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들의 사회는 귀족 중심이었지만, 농업과 축산업을 통해 경제적 안정 기반을 마련했다.
고구려는 부여의 뒤를 이어 성장한 국가로, 주몽(동명성왕)이 건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몽은 활을 잘 쏘고 지혜가 뛰어난 영웅으로, 고조선의 후예라는 인식 아래 민족적 자긍심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초기 고구려는 산악 지형을 이용해 방어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고, 사냥과 전쟁을 중심으로 하는 전사 문화를 발전시켰다. 그들의 ‘동맹’ 제사는 국가의 통합을 강화하는 중요한 종교 행사로, 하늘에 제사를 올리며 국가의 번영을 기원했다. 고구려인들은 강한 자주 의식과 용맹을 바탕으로 북방 문화를 대표하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3. 옥저·동예의 해안 문화와 사회 구조
옥저와 동예는 고구려의 영향권 아래 있었지만, 각각 독특한 문화와 생활 방식을 지녔다. 옥저는 함경도 동해안 일대에 위치했으며, 해산물과 소금이 풍부했다. 주민들은 해산물 교역을 통해 경제를 유지했고, 소금과 어류를 고구려에 바치는 조공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옥저 사회는 귀족 중심보다는 평민층이 많았고, 일부 지역에서는 ‘민며느리제’와 같은 독특한 혼인 풍습이 존재했다. 이는 어린 딸을 미리 다른 집에 보내어 성장 후 결혼시키는 제도로, 당시 사회의 가족 중심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동예는 옥저보다 남쪽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농경과 수렵이 발달했다. 동예 사회는 예의와 질서를 중시하는 문화가 특징으로, 절도와 간통 등 범죄에 대한 형벌이 매우 엄격했다. 그들은 씨족 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법과 규범을 중시했으며, 무천(舞天)이라는 제사를 통해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이는 부족 간 결속을 강화하고, 신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동예의 주민들은 나무와 가죽을 이용한 공예품 제작에도 능했으며, 고대 한국의 초기 수공업 문화를 발전시키는 역할을 했다.
4. 삼한의 형성과 문화적 다양성
한반도 남부의 삼한(마한·진한·변한)은 고대 한국사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이었다. 마한은 오늘날의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고, 진한은 경상도, 변한은 낙동강 하류와 남해안 일대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삼한의 공통적인 사회 구조는 여러 소국(小國)들이 모여 느슨한 연합체를 이루는 형태였다. 각 소국에는 ‘신지’나 ‘읍차’ 등 지배층이 있었고, 제사를 통해 정치와 종교가 결합된 형태를 보였다. 농경이 주된 생업이었으며, 벼농사의 발달로 생산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특히 변한 지역에서는 철 생산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낙동강 유역은 철광 자원이 풍부했기 때문에 철기 문화가 일찍부터 발달했고, 이 철기는 무기나 농기구뿐 아니라 교역품으로도 사용되었다. 삼한 사회는 제사 중심의 신앙과 함께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중시하는 전통을 이어갔으며, 이 시기의 문화적 토대는 훗날 백제와 신라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삼한의 여러 소국 지도자들은 외교 능력과 종교적 권위를 동시에 갖춘 인물로, 각 지역의 정체성을 발전시킨 주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