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찬란한 불교문화와 국제 교류의 꽃, 통일신라와 발해의 시대

하이데어01 2025. 10. 16. 22:17

 

한반도의 고대 삼국이 오랜 전쟁 끝에 새로운 통합의 시대를 맞이한 시기가 바로 통일신라와 발해의 시대입니다. 이 시기는 단순히 정치적 통일만이 아니라, 문화·사상·예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668년,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정복하면서 한반도 남부를 통일하고 통일신라가 들어섰습니다. 동시에 고구려의 유민 대조영은 만주 지역에 발해를 세워 고구려의 문화를 계승했습니다. 즉, 한반도 남쪽에는 불교문화의 꽃이 피어난 통일신라가, 북쪽에는 국제적 교류를 주도한 발해가 공존하며, 남북국 시대라 불리는 새로운 역사가 전개된 것입니다. 이 시기는 우리 민족이 동아시아 속에서 정치적 자주성과 문화적 우수성을 함께 드러낸 시대로 평가받습니다.


 김춘추와 문무왕이 이룬 통일의 기반

통일신라의 기틀을 닦은 인물로는 김춘추(훗날 태종무열왕)과 그의 아들 문무왕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김춘추는 신라의 귀족으로, 혼란스러운 삼국 말기에 뛰어난 외교력으로 나라의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그는 당나라와의 동맹을 통해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백제 멸망 후에도 김춘추는 외교를 통해 신라의 영향력을 확장했고, 결국 신라가 한반도 대부분을 통일하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태종무열왕으로 즉위한 후에는 중앙집권적 왕권 강화를 추진하고, 신라의 군사·행정 체계를 정비하여 안정된 통일국가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그 뒤를 이은 그의 아들 문무왕은 부왕의 뜻을 이어 완전한 통일을 완성한 왕으로 기억됩니다. 문무왕은 백제와 고구려의 옛 땅을 통합하고, 당나라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내어 진정한 자주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그는 불교를 국가의 정신적 중심으로 삼았으며, 동해의 수호신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문무왕의 유해는 경주의 감은사지 앞바다(문무대왕릉)**에 안치되었는데, 이 전설은 신라인들의 정신적 결속과 바다를 통한 무역, 해양 문화의 상징으로 이어졌습니다. 김춘추와 문무왕 부자의 리더십은 통일신라의 탄생뿐 아니라 이후의 정치적 안정과 문화적 번영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불교와 예술, 그리고 국제적 교류의 황금기

통일신라는 삼국 통일 후 안정된 사회를 바탕으로 불교 문화의 황금기를 맞이했습니다. 신라의 불교는 단순한 종교를 넘어 정치·예술·철학을 아우르는 국가의 중심 사상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불국사, 석굴암, 다보탑, 석가탑 등이 이 시기에 완성되었습니다. 석굴암의 부처상은 인체 비례와 미소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세계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불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한 통일신라는 화랑도 정신을 바탕으로 젊은이들의 도덕적 수양과 국가 충성을 강조했으며, 그 결과 사회의 결속력이 높아졌습니다.

이 시기에는 국제 교류도 활발했습니다. 신라는 일본, 중국, 심지어는 아라비아 상인들과도 교류하며, 한반도를 아시아 해상 실크로드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신라의 수도 경주는 동서양의 문물이 오가는 국제 도시로 번성했으며, 귀족 사회에서는 중국 당나라의 유행이 빠르게 퍼졌습니다. 불교 경전과 학문, 의술 등이 중국을 통해 전해졌고, 반대로 신라의 금속공예, 도자기, 장식품 등은 일본으로 수출되었습니다. 통일신라는 단일한 문화권을 넘어 동아시아 문명 교류의 핵심 연결고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고구려의 후예, 발해를 세운 대조영의 나라

한편, 신라가 한반도의 남쪽을 통일하던 시기, 북쪽에서는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중심이 되어 발해(698~926)를 건국했습니다. 발해는 고구려의 유산을 이어받은 나라로, 스스로를 ‘고려의 계승자’라 칭하며 한민족의 자긍심을 지켜나갔습니다. 대조영은 탁월한 군사력과 지도력으로 만주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동북아시아의 강국으로 성장시켰습니다. 발해는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릴 만큼 번영했으며, 정치 제도는 당나라를 모방했지만, 문화적으로는 고구려의 전통과 북방 민족의 개방성을 결합했습니다.

특히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는 당대 최고의 국제도시로, 궁전·탑·도로가 체계적으로 정비된 도시 계획을 보여줍니다. 또한 발해는 일본, 당나라, 신라 등과 외교를 맺고 활발히 교역하며, 북방의 모피, 인삼, 철기 등을 수출했습니다. 발해는 비록 약 230년 만에 거란에 의해 멸망했지만, 그 정신과 문화는 훗날 고려에 계승되어 남북국 시대의 균형과 다양성을 이루었습니다. 대조영은 고구려의 후예로서 민족의 자존심을 되살리고, 동북아시아의 중심에 새로운 문명을 세운 위대한 지도자로 기억됩니다.

 


한민족 문화의 근본을 다진 두 왕국

통일신라와 발해는 서로 다른 지역에서 발전했지만, 한민족의 뿌리를 공유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한국 문화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통일신라는 불교와 예술의 융합을 통해 정신적·문화적 통합을 이루었고, 발해는 국제적 개방성과 정치적 역동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김춘추와 문무왕은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이끌었으며, 대조영은 민족의 자주성을 되찾고 새로운 역사를 개척했습니다. 이 세 인물의 업적은 단순한 통치자의 성취를 넘어, 한민족이 역경 속에서도 결코 꺼지지 않는 창조와 통합의 정신을 상징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계 속의 한국으로 나아가는 길에도, 이들의 도전과 통합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