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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예술의 꽃이 피어난 고려시대의 역사와 문화

하이데어01 2025. 10. 15. 22:00

불교와 예술의 꽃이 피어난 고려시대의 역사와 문화

한국사의 중세를 대표하는 고려시대(918~1392)는 찬란한 문화와 예술, 그리고 굴곡진 정치사를 간직한 시기입니다. 918년, 궁예가 세운 후고구려를 대신해 왕건이 새로운 나라 ‘고려’를 세우면서 약 500년에 걸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고려는 후삼국을 통일(936년)함으로써 한반도를 하나로 묶었고, 통일 이후에는 불교 중심의 안정된 정치 체제를 확립해 갔습니다. 국호를 ‘고려’로 정한 것은 고구려의 계승 의식을 나타낸 것이었으며, 이후 서양에서 ‘Korea’라는 이름으로 전해져 오늘날의 국가명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고려의 정치체제는 왕권과 귀족 세력이 공존하던 귀족 중심의 체제였습니다. 초기에는 지방 호족과의 연합으로 왕권이 비교적 약했지만, 광종이 즉위하면서 과감한 개혁을 통해 왕권이 강화되었습니다. 광종은 노비안검법과거제를 실시해 귀족의 세력을 견제하고, 인재를 공정하게 등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또한 성종 때는 유교 정치 이념이 도입되어 중앙집권적 통치체제가 정비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권문세족이 권력을 장악하고, 고려 후기에는 정치적 혼란과 외세의 침입이 이어졌습니다. 몽골의 침략으로 인해 국토가 황폐해졌고, 이후 원 간섭기를 거치며 고려의 자주권이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고려의 문화는 놀라울 만큼 발전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불교 문화입니다. 불교는 단순한 종교를 넘어 정치, 예술, 건축, 사상 전반에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수많은 사찰과 석탑이 세워졌으며, 그중 해인사에 보관된 팔만대장경은 고려인의 정성과 신앙심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산입니다. 또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인 직지심체요절(1377년)은 서양의 구텐베르크 활자보다 앞선 발명으로, 고려의 인쇄 기술 수준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청자 역시 고려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예술품으로, 은은한 비취색의 고려청자는 지금도 ‘동양 도자기의 꽃’으로 불립니다.

 

 

 

경제적으로 고려는 농업을 중심으로 한 자급자족 사회였지만, 개경과 벽란도 같은 항구를 중심으로 활발한 국제무역이 이루어졌습니다. 송나라, 일본, 아라비아 상인들과의 교류가 이루어지며 고려의 비단, 인삼, 자기 등이 해외로 수출되었습니다. 이러한 교류를 통해 고려는 세계 문물과 사상을 수용하며 국제적인 안목을 넓혔습니다. 하지만 고려 후기에는 권문세족의 부패, 농민 반란, 그리고 왜구의 침입 등으로 사회가 불안해졌습니다. 결국 14세기 말,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일으키고 새 왕조인 조선을 세우면서 고려의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고려시대는 단순히 하나의 왕조가 아니라, 한국 문화의 자부심을 세계에 알린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정치적으로는 혼란과 외세의 간섭을 겪었지만, 그 속에서도 예술과 기술, 그리고 신앙이 조화를 이루며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감상하는 고려청자의 아름다움, 팔만대장경의 정밀함, 그리고 직지의 혁신성은 모두 고려인의 섬세한 감성과 창조정신을 보여줍니다. 고려는 ‘불교의 나라’이자 ‘문화의 나라’로, 우리 역사 속에서 결코 잊혀지지 않을 찬란한 중세의 주인공이었습니다.

 

 

 

고려시대 대표 위인으로 첫번째

왕건 (태조, 877~943)

 

왕건은 고려의 건국자이자 초대 왕입니다. 혼란스러운 후삼국 시대를 통일하며 한반도의 새로운 질서를 세웠습니다.지방 호족과의 혼인 정책(혼인 외교)을 통해 세력을 안정시켰고, ‘훈요십조’를 남겨 왕실과 후대 통치자들에게 교훈을 전했습니다.‘고구려의 계승’을 내세워 고려라는 국호를 정한 것도 왕건이죠.


광종 (925~975)

고려 제4대 왕으로, 왕권 강화를 통해 중앙집권체제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노비안검법을 시행하여 불법적으로 노비로 전락한 백성을 해방시켰고,
과거제를 도입하여 혈연보다 능력을 중심으로 한 인재 등용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강력한 개혁으로 귀족들의 반발도 컸지만, 결과적으로 고려 왕조의 기초를 다진 개혁 군주로 평가받습니다.


  이규보 (1168~1241)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문신이자 문학가입니다.『동명왕편』을 지어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의 업적을 서사시로 표현하면서 우리 고대사를 문학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몽골 침입기의 혼란 속에서도 문학과 사상으로 고려인의 정체성을 지켜낸 인물로 평가됩니다.또한, 현실 비판적인 시와 산문을 남겨 고려 사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