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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보육의 역사에 대하여

하이데어01 2026. 2. 2. 21:37

1.전통사회에서의 보육 개념: 가정과 공동체 중심의 양육

우리나라 보육의 역사는 근대적 제도가 도입되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전통사회에서 ‘보육’이라는 개념은 오늘날처럼 국가나 제도에 의해 운영되기보다는 가정과 공동체 중심의 양육 문화로 자리 잡고 있었다. 조선시대 이전의 농경사회에서는 부모뿐 아니라 조부모, 형제자매, 친척, 이웃이 함께 아이를 돌보는 공동양육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유교적 가치관이 지배하던 조선시대에는 가정이 교육과 양육의 중심이었으며, 어머니의 역할이 특히 강조되었다. 아이는 가문의 계승자이자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식되었고, 예절·도덕·생활 규범은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서 전수되었다. 이 시기의 보육은 제도화되지는 않았지만,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공동체적 정신이 강하게 작용하였다. 다만 신분과 계층에 따라 양육 환경의 차이가 컸고, 여성과 아동의 권리는 제한적이었다는 한계도 존재했다.

 

2. 근대화와 보육시설의 등장: 탁아에서 교육으로

근대적 의미의 보육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여성의 노동 참여가 증가하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공간에 대한 필요성이 커졌다. 이 시기 등장한 ‘탁아소’는 주로 저소득층 가정의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로, 보육보다는 보호와 생계 지원의 성격이 강했다. 1920~30년대에는 선교사와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유아 교육과 보육을 결합한 시설도 생겨났으며, 이는 이후 유치원과 어린이집 제도의 기초가 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전쟁과 사회 혼란 속에서 전쟁고아와 빈곤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보육시설이 확대되었고, 국가 차원의 아동 보호 개념이 점차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보육은 여전히 ‘돌봄’ 중심이었지만, 점차 아동의 발달과 교육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나갔다.

3. 산업화 이후 보육정책의 제도화: 국가 책임의 확대

1970~80년대 산업화와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로 인해 보육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더욱 커졌다. 이에 따라 정부는 보육을 개인이나 가족의 책임이 아닌 사회적·국가적 책임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1991년 「영유아보육법」 제정은 우리나라 보육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이 법을 통해 어린이집의 설치·운영 기준이 마련되었고, 보육교사의 자격 제도도 체계화되었다. 이후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보육료 지원 정책 등이 단계적으로 시행되며 보육의 공공성이 강화되었다. 이 시기 보육은 단순한 ‘아이 맡김’을 넘어, 영유아의 전인적 발달을 지원하는 교육·복지 서비스로 발전하였다. 특히 맞벌이 가정의 증가와 가족 구조의 변화는 보육 서비스의 질과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4. 현대 사회의 보육과 미래 과제: 보편적 복지로의 발전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 보육은 보편적 복지의 영역으로 본격 진입하였다. 무상보육 정책, 누리과정 도입, 부모급여 및 보육료 지원 확대 등은 보육을 모든 가정의 기본 권리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또한 장애아 보육, 시간제 보육, 야간·휴일 보육 등 다양한 형태의 보육 서비스가 등장하며 수요자 중심의 정책으로 변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단순한 양육 지원을 넘어 아동의 권리, 정서적 안정, 놀이 중심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으며, 보육교사의 전문성과 처우 개선 역시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저출산 시대를 맞아 보육은 단순한 복지 정책을 넘어 국가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 핵심 정책 분야가 되었다. 우리나라 보육의 역사는 가정 중심의 양육에서 국가 책임의 보육으로 발전해 온 과정이며, 앞으로도 아이와 가족, 사회가 함께 성장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것이다.

 

출처

 

  • 보건복지부, 『영유아보육사업 안내』
  •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영유아보육법」
  • 한국보육진흥원, 보육정책 연구자료
  • 한국교육개발원(KEDI), 유아교육·보육 관련 보고서
  • 김영명(2005), 「한국 보육정책의 역사적 전개와 특징」